[단편] 세 번째 새벽, 다시 시작하다

새벽의 푸른빛 아래, 삼수생의 고독을 암시하는 복도 조명

새벽 세 시. 그는 또다시 눈을 떴다. 창문 틈새로 스며든 가로등 불빛이 방 안을 얼룩지게 물들였다. 바람은 불지 않았는데도 벽지는 이상하게 떨리고, 책상 위에 쌓인 문제집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방은 마치 호흡조차 막아버리는 투명한 덫 같았다. 외부의 시간은 정지한 듯했고, 내부의 시간만이 시계 초침 소리에 갉아먹히며 흘러가고 있었다.

책상 위에는 해마다 새로 산 문제집과 여전히 남아 있는 낡은 문제집이 뒤엉켜 있었다. 첫 해의 교재는 종이 끝이 닳아 너덜너덜했고, 두 번째 해의 문제집은 형광펜이 지나간 흔적 위에 또다시 연필 낙서가 덧칠되어 있었다. 세 번째 해가 시작되자, 그 모든 책은 더 이상 ‘도구’가 아니라 ‘감옥의 벽’이 되었다. 페이지를 펼칠 때마다, 새로운 문장이 나오기보다 과거의 실패가 반복되어 나타났다. 개미지옥에 빠진 개미가 발버둥칠수록 모래가 무너져내리듯, 그는 아무리 풀어도 그 끝이 깊어만 갔다.

부엌에 불을 켜자 형광등이 두 번 깜빡였다. 어머니는 이미 깨어 있었다. 식탁 위에는 된장국이 식어가며 얇은 기름막을 드리우고 있었고, 밥은 공기 속의 습기를 먹으며 점점 딱딱하게 굳어갔다. 어머니는 그를 보자마자 말없이 숟가락을 앞으로 밀었다. 그 동작에는 따뜻함보다도 ‘강제성’이 묻어 있었다.

“먹어.” 어머니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그 안에는 차갑게 눌러 앉은 피로와 불만이 섞여 있었다.

“괜찮아요.” 그는 짧게 대답했다. 그러나 그 말은 곧장 부메랑처럼 돌아왔다.

“괜찮긴 뭐가 괜찮아. 네가 이러다가 무너지는 거 아냐? 하루 종일 앉아 있다가, 제대로 되는 게 뭐가 있니. 그냥 버티는 게 공부는 아니잖아.” 어머니는 목소리를 낮췄지만, 오히려 그 낮음이 더 무거운 압박으로 다가왔다. 된장국을 휘젓는 젓가락 끝에서 금속 소리가 가볍게 울렸지만, 그 소리마저 귀를 찢는 듯했다.

그는 숟가락을 들어 올리려다, 곧 다시 내려놓았다. 씹는 행위조차 낭비처럼, 스스로를 배신하는 일처럼 느껴졌다. 마치 ‘먹는다’는 사실 자체가 또 다른 죄목이 되는 것 같았다. 어머니의 시선은 무표정 속에 감춰진 불편한 기대였다. “이번에는 다를 거예요.”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그 문장은 이미 가족의 귀 속에서 너무 많이 닳아버린 약속이었다.

거실에는 아버지가 앉아 있었다. TV는 켜져 있었지만, 소리는 거의 꺼져 있었다. 오직 자막만이 화면을 흘러갔다. ‘청년 실업률 증가’, ‘사회 구조적 불평등’ 같은 단어들이 흰 글자로 스쳐갔다. 아버지는 리모컨을 눌러 채널을 계속 바꿨다. 뉴스, 시사 토론, 광고, 다시 뉴스. 그 반복은 어쩌면 자신이 해야 할 말을 대체하는 행위 같았다. 그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지만, 미간이 잠시 펴졌다 접혔다 했다. 아들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는 척, 그러나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태도였다.

책상으로 돌아왔을 때, 초침 소리가 귓속을 할퀴었다. 열네 시간을 앉아도 기억은 늘 같은 장면을 반복했다. 입실표를 내밀던 순간, 시험장 문이 닫히는 소리, 감독관의 구두가 바닥을 치는 리듬, 답안지에 번지는 땀, 지우개를 움켜쥔 손가락의 핏줄. 그 장면들은 더 이상 과거가 아니었다. 현재를 잠식하는 끊임없는 재생, 살아 있는 악몽이었다.

도서관 창가 자리는 언제나 차가웠다. 유리창에는 손바닥 크기의 긁힘 자국들이 겹겹이 남아 있었고, 오래된 공기청정기는 기계적 숨소리를 뱉으며 공기를 휘저었다. 책상에 앉아있으면 온 세상이 폐허가 된 듯 느껴졌다. 바로 옆에 앉은 교복 차림의 소년은 졸기도 하고, 휴대폰을 보며 웃기도 했다. 그의 무심한 산만함이 오히려 살아 있다는 증거처럼 빛났다. 그와 대조되는 자신의 모습은, 이미 꺼져가는 전구 같았다.

“형, 이거 좀 알려줄 수 있어요?” 소년이 내민 문제는, 그가 수없이 풀어본 기출이었다. 펜을 잡는 순간, 오랫동안 굳어 있던 톱니가 맞물리듯 풀이가 흘러나왔다. “여기서는 이 항을 먼저 넘겨야 돼. 그러면 줄어.” 순간, 그는 자신이 단순히 실패의 잔재가 아니라 누군가에게는 길잡이가 될 수 있음을, 아주 잠깐이나마 믿었다. 그러나 그 믿음은 마치 불씨처럼 금방 사라졌다. 곧 다시 초라한 현실이 그를 삼켜버렸다.

집에 돌아온 그는 이번에는 밥을 남기지 않았다.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눈길만 주었고, 아버지는 TV 앞에서 미간을 잠시 풀었다. 그러나 그 눈빛 속에는 여전히 ‘세 번째’라는 낙인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가족은 말하지 않았지만, 그 침묵은 오히려 더 큰 소음처럼 울려 퍼졌다.

그는 책상 앞에 앉았다. 여전히 초침은 귓가를 찔렀고, 문제집의 종이는 차갑게 손끝에 닿았다. 그러나 오늘의 소리는 조금 달랐다. 추궁 같기도, 맹세 같기도 한 그 리듬은 속삭였다. “네가 여기까지 온 건, 그냥 빠져나올 수 없다는 뜻이야.” 개미지옥처럼, 빠져나올 수 없는 길임을 알면서도 그는 펜을 쥐었다. 고집스럽게, 부정적으로, 희망적이라는 이름을 억지로 붙여가며. 시험일까지 며칠이 남았는지는 세지 않았다. 달력의 숫자는 카운트다운일 뿐이었다. 중요한 건, 오늘 하루가 또다시 시작되었다는 사실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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