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낯선 이웃> Ep.1 ― 안곡읍의 아침

안곡읍의 아침은 늘 소리부터 깨어났다. 좌판을 여는 비닐이 바람에 찢기듯 흔들리고, 골목마다 철제 셔터가 덜컥거렸다. 버스가 정류장에 서며 내뿜는 공기 브레이크의 거친 숨이 좁은 길을 가득 메웠다. 장터 한쪽에선 더덕과 무의 흙 냄새가 먼저 퍼졌고, 조금 늦게 전을 부치는 고소한 냄새가 따라붙었다.

양춘자는 슈퍼 앞 플라스틱 의자에 걸레를 쓱쓱 문지르고 앉았다. 가게 문은 열었지만 손님보다 먼저 오는 건 바람과 소문이었다. 지나가는 사람마다 그녀에게 인사를 건넸고, 그녀는 빈말 반 진심 반으로 답했다. “오늘은 장이 좀 서려나.” “애들은 학교 잘 다니지?” 누군가 대꾸하면 그 대답 속에서 또 다른 얘기를 꺼내는 게 그녀의 특기였다.

그때 골목 끝에서 택배차가 경적을 울리며 들어왔다. 박성우였다. 짐칸에는 크고 작은 박스들이 위태롭게 흔들렸다. 그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팔로 박스를 밀어젖히며 투덜거렸다. “하… 이래서는 오늘도 해지고 한참 후에 겨우 들어가겠네.” 땀이 턱으로 떨어져 셔츠를 적셨다.

“성우야, 아침부터 숨이 헐떡이네. 물이라도 좀 마셔.” 양춘자가 목소리를 높였다.

“쉬면 더 밀려요. 이 동네는 문도 제때 안 열고, 연락도 안 받아. 택배가 아니라 숨바꼭질이라니까.” 박성우는 빈 박스를 발로 접으며 씩 웃었다. 하지만 휴대폰 화면에 스친 ‘연체’ 두 글자가 그 웃음을 금세 무겁게 눌렀다. 그는 화면을 엎어놓고, 들은 체도 안 한 듯 박스를 어깨에 걸쳤다.

그 순간 학생 둘이 민트색 머그컵을 들고 카페 쪽으로 달려갔다. “Rose Café 라떼 먹자!” “어제 과제 때문에 밤새워 죽겠네.” 웃음과 한숨이 섞인 목소리가 지나갔다. 박성우는 그 소리에 피식 비웃으며 말했다. “사람 잡는 건 교수만 하는 줄 아나. 상사도 거래처도 다 똑같이 사람 잡지.” 누가 듣든 말든 흘리듯 던지고, 골목을 빠져나갔다.

양춘자는 학생들이 달려간 방향을 바라봤다. 카페 간판에 장밋빛 불빛이 켜져 있었다. Rose Café. 창가에는 이미 몇몇 학생이 앉아 있었고, 안에서는 이선희가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녀는 커피머신을 닦으며 습관처럼 혼잣말을 했다. “오늘은 손님이 좀 붙으려나.”

문이 열리자 아르바이트생 김재훈이 들어왔다. 책가방을 벗어 카운터 뒤에 던지듯 내려놓고, 컵 뚜껑을 굴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사장님, 이력서에 뭐라도 더 써야 할까요?”

이선희는 미소를 지으며 시럽병 높이를 맞췄다. “동아리 회장 이런 거 해봤다 쓰면 좋지. 아니면 자격증 하나라도 붙이고. 요즘 애들은 다 그렇게 하더라.”

“그게 다 뭔데요….” 김재훈의 목소리는 금세 가라앉아 설탕처럼 녹았다. 하지만 대꾸할 틈도 없이 주문이 들어왔다. “아메리카노 두 잔 주세요.”

이선희는 능숙하게 버튼을 눌렀다. 진한 향이 퍼지자 손님이 말했다. “향이 참 좋네요.”

이선희의 눈매가 반짝였다. 기다렸다는 듯 대답이 튀어나왔다. “서울에서 장사할 때 쓰던 방식이 있어요. 물 비율을 조금 다르게 잡으면 끝맛이 훨씬 깔끔하죠.” 말끝에 은근히 자부심을 얹었다.

학생 손님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음료를 받아 들었다. 그 옆자리에서는 또 다른 학생 무리가 시험 얘기를 꺼내고 있었다. “토익 점수 올려야 하는데 죽겠다.” “나도 취업 준비한다고 하면서 맨날 게임만 해.” 그 말에 모두 웃음이 터졌지만, 웃음 뒤에 길게 이어진 침묵은 누구도 채우지 못했다. 김재훈은 그 대화를 곁눈질하며 괜히 고개를 숙였다.

카페 한쪽, 새 얼굴의 부부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여자는 과하게 환한 미소를 지었고, 남자는 말없이 수첩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그는 쓰지도 않고, 펼치지도 않은 채 표지만 손끝으로 쓸어내렸다.

“메뉴 추천해 주실래요?” 여자가 먼저 말을 걸었다. 이선희가 미소로 응수했다. “라떼가 부드러워요. 서울에서 배운 방식이 있거든요.”

“아, 저희도 서울에서 오래 살다 이사를 왔어요.” 여자는 익숙하다는 듯 웃음을 덧붙였다. 그 웃음은 주변까지 환하게 비추는 듯했지만, 김재훈은 괜히 시선을 돌렸다. 남자는 짧게 고개만 끄덕이며 라떼와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낮고 분명한 목소리였다.

잠시 후 두 잔의 커피가 놓였다. 여자는 연거푸 “고맙습니다”를 입에 올렸다. 말끝마다 감사가 습관처럼 붙었다. 남자는 여전히 수첩을 열지 않았다. 다만 창밖을 잠깐 바라보다, 잔을 조용히 들었다. 이선희는 알 수 없는 긴장감에 컵받침을 하나 더 챙겨 얹었다. 하늘은 맑았지만 그녀는 괜히 중얼거렸다. “비가 올 것 같아서요.”

저녁이 가까워오자 시장의 소음이 줄고, 의원 간판 불이 켜졌다. 최만수 원장은 처방전을 내주며 습관처럼 말했다. “건강이 최고야. 짜게 먹지 말고.” 그러나 그의 시선은 자꾸만 손목시계에 머물렀다. 차트보다 초침이 더 길게 눈에 들어왔다. 잠시 후 걸려온 전화를 그는 받지 않고 화면을 뒤집었다.

길 건너 슈퍼 앞, 양춘자는 다시 의자에 앉아 있었다. 박성우는 여전히 박스를 짊어지고 골목을 헤매고 있었고, Rose Café 창가에는 김재훈이 남은 음료를 빨대에 굴리며 앉아 있었다. 모두의 하루가 이어지는 사이, 그 부부는 조용히 슈퍼 앞을 지나갔다. 여자가 환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남자는 고개만 끄덕였다.

양춘자는 허리를 조금 숙여 대답했다. “처음 뵙는 얼굴인데… 안녕하세요.” 짧은 인사였지만, 그녀는 부부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다가 다시 의자에 앉았다. 저녁 햇살이 건물 사이로 기울며 길게 그림자를 늘렸다. 그늘 속에서, 낯선 이웃의 수첩과 과한 웃음이 자꾸만 떠올랐다.

슈퍼 셔터를 반쯤 내린 채, 양춘자는 의자에 앉아 사람들의 발걸음을 바라봤다. 장터의 남은 채소 상자가 텅 비어가고, 분식집 앞에는 떡볶이 국물 냄새가 길게 늘어섰다. 아이 둘을 데리고 지나가던 젊은 엄마가 슈퍼 앞에서 멈춰 음료를 고르자, 양춘자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계산대를 지켰다. 아이가 고른 것은 사탕 하나였고, 엄마는 난처하게 웃으며 돈을 내밀었다.

“공짜로 가져가요. 애는 사탕이 약이지.” 양춘자가 웃자, 아이는 수줍게 인사를 하고 뛰어갔다. 엄마는 몇 번이나 허리를 굽히며 감사 인사를 했다. 양춘자는 손을 내저으며 “별것도 아닌데 뭘” 하고 중얼거렸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이 묘하게 허전했다. 낮에 봤던 부부의 환한 인사가 다시 떠올랐다. 그 웃음은 분명 예의 바른 것이었는데, 왠지 속내가 잘 잡히지 않았다.

맞은편 Rose Café 안은 아직 불이 꺼지지 않았다. 이선희가 테이블을 정리하며 김재훈과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유리창을 통해 들리지는 않았지만, 두 사람이 무언가를 두고 옥신각신하는 몸짓이 보였다. 김재훈은 고개를 자주 끄덕이다가 이내 손가락으로 머리를 긁적였고, 이선희는 팔짱을 낀 채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양춘자는 그 모습이 꼭 엄마와 아들이 다투는 것처럼 보여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바로 옆 의원 건물에서는 불이 꺼졌다 켜졌다를 반복했다. 잠시 후, 하얀 가운을 벗은 최만수가 건물 밖으로 나왔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손목시계를 두어 번 확인한 뒤 전화를 걸었지만, 곧 고개를 저으며 끊었다. 그 얼굴은 피곤과 걱정이 뒤섞인 듯했으나, 주민들이 보는 방향으로는 언제나 웃음을 붙들고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이 인사하자 그는 또다시 습관처럼 말했다. “건강이 최고예요.”

골목 저편에서는 박성우의 택배차가 마지막으로 시동을 걸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그는 시트를 힘껏 뒤로 젖히고는 길게 하품을 했다. 옆자리엔 빈 커피캔이 굴러다니고, 계기판에는 내일 다시 시작될 고단한 하루가 이미 예고된 듯 불빛이 켜졌다. 박성우는 창문을 반쯤 내리며 욕설을 흘렸다가 곧 스스로 피식 웃고는, 라디오 볼륨을 높였다. 잡음 섞인 노래가 읍내 밤공기와 뒤섞였다.

해가 완전히 기울자, 읍내는 조금씩 다른 얼굴을 드러냈다. 낮의 장터 대신 포장마차 불빛이 켜지고, 대학가 쪽에서는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술잔을 기울였다. 웃음소리와 노랫소리가 바람에 실려왔다. 그러나 슈퍼 앞에 앉은 양춘자의 귀에는 이상하게도 그 소리들이 멀게만 느껴졌다. 그녀의 눈길은 여전히 부부가 사라져간 골목으로 향해 있었다.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간 뒷모습이 자꾸만 떠올랐다.

“뭘 그리 오래 보냐, 춘자야.” 지나가던 노인이 농담처럼 말을 건네자 그녀는 흠칫 놀라 웃음으로 얼버무렸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오늘따라 눈에 띄어서.”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지나갔지만, 양춘자는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슈퍼 셔터를 완전히 내리기 전, 그녀는 다시 한번 카페 불빛과 의원 간판, 그리고 어둠에 묻힌 골목을 차례로 바라봤다. 모두 평소와 다르지 않은 풍경이었지만, 오늘은 어쩐지 작은 이물감이 한 줄기 실처럼 얽혀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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