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 가제: 낯선 이웃 – Ep.1 안곡읍의 아침

안곡읍의 아침은 늘 소리부터 깨어났다. 그러나 그 소리들은 결코 온화하지 않았다. 장터 천막을 잡아당기며 울리는 천의 비명, 철제 셔터가 덜컥거리며 올라갈 때 퍼지는 금속의 긁힘, 버스가 정류장에서 내뿜는 공기 브레이크의 거친 숨소리. 익숙하다고 말하면 익숙했지만, 귀 기울이면 마을은 깨어나는 대신 어디선가 천천히 삐걱거리고 있었다.

양춘자는 슈퍼 앞에 낡은 플라스틱 의자를 꺼내 걸레로 문질렀다. 밤새 맺힌 이슬이 굳은 먼지와 뒤섞여 얼룩을 만들었는데, 아무리 문질러도 지워지지 않았다. 닦다 만 걸레를 무릎 위에 얹은 채 앉아 있으면, 바람과 함께 들어오는 것은 손님이 아니라 먼저 도착한 소문들이었다.

지나가던 동네 아주머니가 장바구니를 흔들며 인사했다.
“춘자 아지매, 오늘은 장이 좀 서려나.”
“글쎄요, 요즘 같아선 알 수 있나요.”
짧은 인사였지만, 양춘자는 아주머니의 시선을 따라갔다. 장바구니 안쪽에선 생선 포장 비닐이 축축한 소리를 내며 들썩였다. 파닥거림 같은 잔향이 귓가에 남아, 대화가 끝난 후에도 오래 울렸다.

잠시 뒤, 지팡이를 짚은 노인이 슈퍼 앞을 멈추었다. “춘자야, 간장 있지?” 그녀는 익숙하게 병을 건네며 웃었다. “있지요. 그나저나 아침은 드셨어요?”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으나, 눈동자가 공허하게 흔들렸다. 간장을 받아든 손마디가 덜덜 떨리는 것을 보고 양춘자는 문득 입술을 다물었다. 평소 같으면 잔소리 몇 마디를 덧붙였겠지만, 오늘은 도무지 말이 이어지지 않았다.

슈퍼 안은 정적에 잠겨 있었다. 진열대의 라면 봉지들이 햇빛을 받아 반짝일 때, 양춘자는 괜히 라벨 방향을 맞추며 손을 움직였다. 손길이 멈추는 순간마다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는 것 같아, 가만히 앉아 있는 게 더 힘들었다.

한낮이 가까워지자, 학생 몇 명이 웃으며 골목을 뛰어갔다.
“Rose Café 가자. 라떼가 괜찮다던데.”
“근데 또 서울 얘기할 것 같은데. 사장님, 그 얘기 맨날 하잖아.”
작은 웃음이 튀고, 발소리가 돌바닥에 흩어졌다. 그 말이 특별할 것 없는 잡담임에도 불구하고, 양춘자는 오래 귀에 맴도는 게 이상했다. 순간적으로 카페 간판 불빛이 머릿속에 켜졌다 꺼지는 것 같았다.

점심 무렵, 익숙한 그림자가 슈퍼 앞을 스쳤다. 박성우였다. 택배차에서 내려 박스를 끌어내며 투덜거렸다. “하… 이래서는 오늘도 해지고 나서야 들어가겠네.” 양춘자는 물 한 병을 건네려다 멈췄다. 그의 얼굴에는 흘린 땀보다 더 무거운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는 휴대폰 화면을 잠시 본 뒤, 그대로 주머니에 밀어 넣었다. 양춘자는 무심히 눈길을 돌렸지만, 스친 단어 하나가 선명하게 남았다. ‘연체.’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한 채 박성우는 다시 골목 저편으로 사라졌다.

오후의 해가 느리게 기울며, 마을은 잠시 숨을 고르는 듯 고요해졌다. 슈퍼 앞을 지나던 중년 여인이 비닐봉지를 흔들며 멈춰섰다. “춘자 아지매, 반찬 좀 나눠 드릴까 해요. 남편이 입맛이 없다고 해서 괜히 많이 했네.” 양춘자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봉지를 받아 들었을 때, 묘하게 손끝이 차가웠다. 따뜻한 반찬이 들어 있어야 할 봉투가 이유 모르게 무거웠고, 안에서 스치는 소리가 부드럽지 않았다. 그녀는 괜히 “고마워요” 하고 얼버무렸지만, 발걸음을 옮기는 여인의 등이 오래도록 눈에 남았다.

해질녘이 다가오자, 그림자들이 길게 늘어졌다. 장터의 좌판은 하나둘 접히고, 분식집 앞에서는 떡볶이 냄새가 길게 뿜어져 나왔다. 아이 둘을 데리고 지나가던 젊은 엄마가 슈퍼 안을 기웃거리다 음료 하나를 집어 들었다. 아이가 사탕을 집어 들자, 엄마는 난처하게 웃으며 돈을 내밀었다. “그냥 가져가요. 애는 사탕이 약이지.” 양춘자가 웃었지만, 그 웃음은 입술에만 걸렸다. 아이가 인사를 하고 뛰어가는 소리가 유난히 또렷하게 들려왔다. 돌바닥에 부딪히는 발소리가 점점 멀어지는데도, 귓가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였다. 골목 끝에서 두 개의 그림자가 다가왔다. 남자와 여자. 그들은 천천히 걸어왔지만, 발소리가 이상하게 균일했다. 여자는 환한 미소를 얼굴에 고정한 채 “안녕하세요” 하고 말했다. 남자는 말없이 수첩을 들고 고개만 끄덕였다. 그 순간 주변의 모든 소리가 잠시 멎은 듯 고요해졌다.

양춘자는 허리를 조금 숙여 인사를 받았다. “처음 뵙네요. 근처에 새로 오셨나 봐요.” 짧은 대화는 그것으로 끝났다. 부부는 곧장 슈퍼 앞을 지나 골목 어둠으로 몸을 감췄다. 그러나 남겨진 것은 웃음의 잔상과, 펼쳐지지 않은 수첩의 표지였다.

양춘자는 한참 동안 의자에 앉아 움직이지 못했다. 햇살이 건물 사이로 기울며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그녀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눈꺼풀 안쪽에 조금 전의 미소가 남아 있었다. 분명 공손하고 환한 웃음이었지만, 이상하게 온기가 묻지 않았다. 오히려 말라붙은 종이처럼 건조하게 떠올라 목 안쪽을 서서히 조여왔다.

바람이 멎자, 마을은 적막에 잠겼다. 냉장고 모터가 돌아가는 소리만이 얇게 깔렸다. 양춘자는 셔터를 반쯤 내렸지만, 손잡이를 놓고도 한동안 골목을 바라봤다. 평소와 다르지 않은 어둠이었으나, 그 안에 무언가 낯선 것이 숨어 있는 듯했다. 설명할 수 없는 감각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다.

“아무 일도 아니지.” 그녀는 중얼거렸지만, 그 말조차 공기 속에서 오래 메아리쳤다. 어느새 장터의 불빛은 꺼지고, 멀리 카페의 간판 불빛만이 희미하게 번졌다. 두 풍경이 시야에 겹쳐 들어오는 순간, 마음 한구석이 서서히 조여들었다. 양춘자는 걸레를 움켜쥔 채 의자에 다시 앉았다. 그리고는, 오래도록 움직이지 않았다.

안곡읍의 해가 기울 즈음, 소리들은 하나씩 몸을 낮췄다. 그러나 잠잠해질수록 더 잘 들리는 소리들이 있었다. 가게 천장 속에서 아주 미세하게 울리는 전선의 윙윙거림, 냉장고 모터가 식을 때 내는 짧은 탄식, 문턱 아래로 스며드는 바람의 거친 숨. 양춘자는 그 소리들을 세어 보았다. 하나, 둘, 셋— 어느 순간부터 숫자가 이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의자에서 일어나 진열대 끝을 손가락으로 훑었다. 먼지가 얇게 묻어나 손끝이 까끌거렸다. 손을 털어도 떼가 지워지지 않는 느낌이 남았다. 주스를 한 칸 아래로, 라면을 반 칸 위로, 껌을 계산대 가까이. 칸마다 뭔가 조금씩 어긋나 있었다. 아침에 분명 맞췄다고 생각했는데, 기시감이 이마 뒤쪽을 조심스레 긁었다.

문이 가볍게 열렸다. 종소리는 울리지 않았다. 종은 분명히 달려 있었지만, 그날은 울리지 않았다. 양춘자가 고개를 들었을 때, 아무도 없었다. 바람이었구나— 그녀는 혼잣말로 정리했지만, 문틈이 닫히는 소리는 이상하게 늦게 도착했다. 뒤늦게 ‘딱’ 하고 마감하는 소리. 마치 누군가 지켜보다가 손을 떼는 타이밍을 길게 끌다가 놓은 것처럼.

“춘자 아지매.” 낮게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박자 없이 툭 떨어지는 남자 목소리였다. 골목 쪽에서 박성우가 나타났다. 어깨에 걸친 박스는 이미 모서리가 눌려 있었다. “이거, 우체통 앞에 놓던 그 물건 또 반품이래요. 주소는 맞는데, 받는 사람이 없대요.” 양춘자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 집, 낮에도 불이 켜져 있던데.” 박성우가 씩 웃었다. “그래서 더 골치 아프죠. 불 켜진 집은 있는데, 집은 늘 비어 있는 느낌.” 그는 박스를 발끝로 살짝 밀어 두었다. “어디다 둬요?” “그냥 여기 뒤로.” 양춘자가 말하자, 박성우는 천천히 박스를 끌고 들어왔다. 박스 표면에는 송장의 글자가 손가락에 자꾸 걸릴 정도로 두껍게 코팅되어 있었다. 그는 테이프를 꾹 눌러 놓고 말없이 뒤로 물러났다.

“성우야.” 양춘자가 잠시 망설이다가 불렀다. “오늘, 낮에 낯선 부부 봤지?” 그는 눈썹을 약간 치켜올렸다. “어디서요?” “그냥, 지나갔어. 인사하고.” 박성우는 대답 대신 지게처럼 등이 굽은 자세로 고개를 끄덕였다. “인사하는 사람 많지요. 오늘은 더 많았고.” 그 말은 실제보다 한 박자 느리게 가게 안에 퍼졌다. 그는 돌아서며 손등으로 땀을 훔쳤다. “아지매, 문 조심하세요. 오늘 문종이 안 울리더라.” 그는 스스로도 알 수 없는 말투로 덧붙였다. “누가 들어오고, 누가 나갔는지 잘 모르겠는 날이 있어요.” 그리고 더 말하지 않고 골목으로 사라졌다.

그가 떠난 뒤, 가게는 한동안 숨을 참는 듯 조용했다. 양춘자는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네온등은 반쯤 깜빡이다가 이내 평정을 되찾았다. 유리문에는 그녀의 모습이 비쳤다. 정면을 보는데도, 거울 속 그녀의 눈동자는 약간 옆을 보는 것처럼 보였다. 사진을 잘못 인화했을 때처럼, 초점이 미묘하게 비껴 있었다.

해는 더 내려앉았다. 장터쪽 포장마차가 하나둘 불을 켰고, 길바닥에는 덜 마른 기름 얼룩이 긴 혀처럼 번져 있었다. 바람이 불면 기름 냄새가 희미한 단내와 섞였다. 허한 속을 잠깐 달게 만들었다가, 곧장 속을 뒤집어 놓는 냄새.

양춘자는 카운터 서랍에서 작은 공책 하나를 꺼냈다. 오래전부터 써온 계산장부였다. 날짜, 품목, 수량, 금액. 일정한 칸칸이 마음을 안정시켜 주는 날이 있었다. 오늘은 아니었다. 칸을 따라 적다가, 그녀는 볼펜을 놓았다. ‘물 10병’ 아래에 눌러쓴 글씨가 보였다. ‘미지급.’ 그 밑에도, 그 밑에도 같은 글자가 반복되었다. 그녀가 쓴 필체가 맞는데, 자신이 썼던 기억은 어딘가 비었다. 몇 줄쯤은 정말로 빈칸이었다. 칸은 빈칸인데, 빈칸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문 앞을 누군가 스쳤다. 이번에는 종이 분명 울렸다. 한 번, 아주 짧게. 양춘자가 바라봤을 때, 유리문 너머에는 아무도 없었다. 바람이 아니다. 바람이라면 종은 더 가볍게 흔들렸을 것이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바깥을 살폈다. 골목은 비어 있었다. 다만 옆집 벽에 붙은 안내문 한 장이 절반만 들떠 있었다. ‘심리상담— 예약제’. 종이가 들리는 쪽으로 미세하게 들썩였다. 누가 바로 앞에서 떼다가 말아 놓은 것처럼.

가게 안으로 돌아오자, 전화가 울렸다. 벨소리는 단조로웠다. 양춘자는 수화기를 들었다.
“네, 슈퍼입니다.”
잠깐,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수화기 먼 끝에서 바람 소리 같은 잡음만 흘렀다. 양춘자는 인사를 다시 했다. “여보세요?”
그때 아주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장보따리… 두고 갔다.”
“누구세요?”
끊겼다. 수화기를 내려놓는 순간, 가게 안의 그림자들이 동시에 짧게 흔들렸다. 그녀는 느리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내쉬는 걸 잊었다가 뒤늦게 내쉬었다.

어둠이 더 내려오면서, 소리들은 두껍고 무거워졌다. 아이 울음이 멀리서 한 번 튀었다가 금세 사라졌다. 개 짖는 소리가 뒤따랐다. 발소리, 문 닫히는 소리, 플라스틱 통 부딪히는 소리— 모든 소리가 잠깐씩 얼굴을 내밀고 다시 물러났다. 어떤 소리는 방금 전에도 똑같이 들린 것 같았다. 같은 소리가 반복되는지, 비슷한 소리들이 이어지는지, 구분이 흐려졌다.

양춘자는 셔터를 더 내렸다. 바닥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었다. 그녀는 무릎을 굽히고 셔터 아래로 바깥을 보았다. 낮은 시야에는 사람의 발만 지나갈 수 있었다. 그때, 회색 운동화 한 켤레가 셔터 아래를 천천히 스쳤다.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고, 셔터 아래 어둠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양춘자는 자신이 숨을 멈추고 있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아무 일도, 아니다.” 그녀가 소리 내어 말했다. 이번엔 소리가 스스로를 지탱하지 못했다. 금방 꺼지는 성냥불처럼. 그녀는 의자에 다시 앉아 카운터 위의 공책을 덮었다. 장부 위에 얇은 먼지가 앉은 것처럼 보였다. 손끝으로 쓸어보니, 먼지는 없었다. 대신 종이의 거친 결이 손바닥에 작은 흠집처럼 남았다.

그때 유리창에 그림자가 스쳤다. 정면에서 비켜난 각도였고, 지나간 속도는 너무 느렸다. 양춘자가 고개를 들었을 때, 문 밖에는 누군가 서 있었다. 낮에 보았던 그 여자였다. 낮처럼 환하게 웃고 있었지만, 웃는 동안에도 눈동자는 흔들리지 않았다. 여자의 어깨 너머로 남자의 실루엣이 희미하게 겹쳤다. 남자는 수첩을 들고 있었고, 수첩의 모서리가 유리 반사광을 지우개처럼 문질렀다.

문 앞까지 다가왔는데도 바람도, 발소리도 일지 않았다. 여자는 입모양만으로 ‘안녕하세요’라고 말했다. 소리는 늦게 왔다. 반 박자 뒤에야 얇은 인사가 가게 안을 미끄러졌다. 양춘자는 자기도 모르게 허리를 숙였다. “예, 어서 오—”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여자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뒤로 물러났다. 남자의 실루엣도 함께 사라졌다. 두 그림자가 골목 어둠으로 파고드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다만 오래 걸린 것처럼 보였다.

남은 건 유리문에 눌어붙은 손자국 하나였다. 아주 얇고 길쭉한 무늬. 양춘자가 손바닥을 대보았지만 크기가 맞지 않았다. 유리 안쪽에서 닦아내려 했지만, 얼룩은 바깥쪽에서만 지워질 듯 보였다. 문을 열어 지우려다, 그녀는 동작을 멈췄다. 문이 열릴 때, 종이 울리지 않을까 봐. 울리지 않는 종이, 혹은 너무 늦게 울리는 종이. 어느 쪽도 오늘은 불길했다.

그녀는 셔터를 끝까지 내리지 않았다. 사람 하나가 허리 숙이면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높이를 남겨 두었다. 이유는 없었다. 이유를 찾아보면 금방 거짓말이 될 것 같았다. 가게 안의 불만 한 칸 줄였다. 형광등은 낮아진 밝기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듯,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깜빡였다.

장터 쪽에서 누군가 웃는 소리가 아주 멀리서 한 번 들리고 끊겼다. 카페 간판의 붉은 빛은 간헐적으로 맥을 쳤다. 유리문 손자국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양춘자는 그 앞에 서서, 손자국을 바라보다가, 자신의 손바닥을 천천히 펼쳐 올렸다. 유리와 손 사이에 얇은 공기의 막이 끼었다. 그 막을 뚫고 나가면, 무언가가 바뀔 것만 같았다.

그녀는 잠깐 숨을 멈추었다가, 아주 천천히 들이마셨다. 그리고 내쉬지 않았다. 시간은 한 박자 늘어났다. 셔터 아래로 바람이 스며들며 먼지 한 가닥을 밀었다. 그 가닥은 유리문 아래를 스쳐 지나가다가, 어느 지점에서 방향을 바꾸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단지, 그 순간에만 바람이 달라졌을 뿐.

안곡읍은 고요했다. 그러나 그 고요는 언제나처럼 얇지 않았다. 두꺼운 담요 같기도 하고, 물속 같기도 했다. 소리들이 더뎌지고, 행동이 늦어지는 시간. 양춘자는 의자에 앉아, 유리문 반사 속 자신을 보았다. 거울 속의 그녀는 아주 조금, 현실보다 늦게 눈을 깜빡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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