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 가제: 낯선 이웃 – Ep.2 느린 시계

다음날 아침은 공기가 눅눅했다. 슈퍼 유리문에 희미한 김이 앉았다가 금세 사라졌다. 양춘자는 계산대에 앉아 동전 쟁반을 반쯤 돌려놓은 채, 바코드 스캐너의 붉은 선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문 앞에서 그림자가 멈췄다. 종은 울리지 않았다. 유리에 비친 밝은 색 원피스가 먼저 들어왔다. 조금 뒤, 검은 실루엣이 겹쳐졌다. “안녕하세요.” 여자가 문을 열며 말했다. 웃음이 먼저 들어오고, 목소리는 반 박자 … Read more

<장편> 가제: 낯선 이웃 – Ep.1 안곡읍의 아침

안곡읍의 아침은 늘 소리부터 깨어났다. 그러나 그 소리들은 결코 온화하지 않았다. 장터 천막을 잡아당기며 울리는 천의 비명, 철제 셔터가 덜컥거리며 올라갈 때 퍼지는 금속의 긁힘, 버스가 정류장에서 내뿜는 공기 브레이크의 거친 숨소리. 익숙하다고 말하면 익숙했지만, 귀 기울이면 마을은 깨어나는 대신 어디선가 천천히 삐걱거리고 있었다. 양춘자는 슈퍼 앞에 낡은 플라스틱 의자를 꺼내 걸레로 문질렀다. 밤새 맺힌 … Read more

[장편]<낯선 이웃> Ep.1 ― 안곡읍의 아침

안곡읍의 아침은 늘 소리부터 깨어났다. 좌판을 여는 비닐이 바람에 찢기듯 흔들리고, 골목마다 철제 셔터가 덜컥거렸다. 버스가 정류장에 서며 내뿜는 공기 브레이크의 거친 숨이 좁은 길을 가득 메웠다. 장터 한쪽에선 더덕과 무의 흙 냄새가 먼저 퍼졌고, 조금 늦게 전을 부치는 고소한 냄새가 따라붙었다. 양춘자는 슈퍼 앞 플라스틱 의자에 걸레를 쓱쓱 문지르고 앉았다. 가게 문은 열었지만 손님보다 … Read more

[단편] 세 번째 새벽, 다시 시작하다

새벽 세 시. 그는 또다시 눈을 떴다. 창문 틈새로 스며든 가로등 불빛이 방 안을 얼룩지게 물들였다. 바람은 불지 않았는데도 벽지는 이상하게 떨리고, 책상 위에 쌓인 문제집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방은 마치 호흡조차 막아버리는 투명한 덫 같았다. 외부의 시간은 정지한 듯했고, 내부의 시간만이 시계 초침 소리에 갉아먹히며 흘러가고 있었다. 책상 위에는 해마다 새로 산 문제집과 … Read more